*리마님 캘리그라피입니다.
*마츠하나 전력 60분
*24살의 마츠카와X17살의 하나마키
*첫눈에 반한 사람, 마츠카와 잇세이와 과외를 시작하게 된 하나마키의 이야기.




W. 멜





가을의 냄새. 사락거리며 바닥으로 내려앉는 낙엽소리와 드높은 하늘은 어느덧 계절이 돌고 돌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서늘한 기운이 창가에 서리는 9월. 붉은빛으로 여물어가는 하늘을 좀 더 가까이 보기위해 분홍빛 머리칼을 가진 남자는 의자를 옮긴다. 덜컹이는 소리와 함께 탁 트인 창문 너머로 하늘이 한뼘 너머로 가까워진다. 그가 하늘에 정신을 팔고 있는 사이, 또다른 누군가가 그의 앞으로 머그잔을 들이민다. 인기척에 슬쩍 고개를 돌린 하나마키는 그가 들고온 쟁반위의 것을 보고 김이 빠진다.

"뭐에요- 슈크림 없어요?"

그곳에는 불행히도 슈크림이 아닌 먹음직스러운 딸기 케이크 한 조각이 놓여있었다.

"케이크라도 사주는걸 감사하게 여기는 건 어때?"
"네네~ 감사합니다~"

흥, 아메리카노 시켰으면 한 소리 하려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마츠카와는 그의 입맛을 잘 알고 있었다. 캬라멜 시럽을 듬뿍 얹은 마끼아또. 하나마키는 머그잔을 조심스레 들어 달콤하기 그지 없는 캬라멜 향을 음미하다 못참겠다는 듯 입을 댄다. 달달한 우유 끝에 풍기는 약간의 커피내음이 나쁘진 않다. 그제야 씨익 웃으며 그의 입가에 뭍은 우유 거품을 손가락으로 닦아내는 마츠카와는 누가보아도 멋스러웠다.

"삐졌어?"
"아뇨~ 전혀~"

소리가 나지 않게 의자를 꺼내 그의 앞에 털썩 앉은 마츠카와는 케이크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딸기를 포크로 집어든다. 그의 입에 넣어 줄까 말까 되도 않는 장난을 치면서 말이다. 그가 입을 뾰루퉁하게 내밀자 그제야 빨갛게 익은 딸기를 그의 입술에 갖다대는 마츠카와. 오물거리며 한 볼 가득 딸기를 품고 있는 그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다 말을 꺼낸다.

"하나마키."
"엑, 갑자기 뭐에요. 항상 히로라고 불렀으면서."
"기억나? 저 사거리-"

턱을 비스듬히 괸 마츠카와의 시선의 끝에는 창밖, 그 너머의 거리가 보인다. 새빨간 단풍잎과 샛노란 은행잎이 살랑거리는 사거리의 중심. 새록새록 떠오르는 처음의 기억. 그를 따라 턱을 괴던 하나마키의 눈이 가늘어진다.

"....기억 못할리가 있나요."

당신과 처음 만난 곳인데. 혀끝을 맴도는 딸기향. 그것이 마냥 싫지는 않다. 생각에 잠겨 가만히 그 때를 떠올리고 있으면 그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겨버리는 마츠카와가 있다. 아프잖아요- 투덜거리는 하나마키를 향해 피식 웃으며 말해본다.

"저기요! 하면서 날 불러세웠잖아."
"아아아아아 안들려요 안들려!!"
"귀여웠는데 말이지."

물론 지금도. 한 마디만 던졌을 뿐인데 벌겋게 달아오른 채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붕붕 젓는 눈 앞의 이 아이가, 귀여워 미치겠다.

"전 그 때 생각하고 싶지 않다구요!"
"왜?"
"그야....."

당신에게 여자친구가 있었으니까.




#




그 해의 봄은 유난히 따뜻했다. 그래서 그런걸까, 몸과 마음이 들떴던 이유는.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쯤 알고 있었다. 부정하고 싶진 않았다. 분홍색 머리칼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을때도, 친했던 동성 친구에게 온갖 끔찍한 욕을 들었을때도, 이상하게 자기 혐오는 들지 않았다. 자존감이 높은걸까? 아니면, 포기한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으려나."

혼자 걷는 봄의 거리는 예쁘다. 봄을 맞아 만개한 벚꽃들이 저들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하늘하늘 흩날린다.

"아니... 아니지."

혼자 걷는 봄의 거리는 끔찍하다. 봄을 맞아 꽃놀이를 나오는 연인들이 풍기는 사랑 내음새가 온바닥에 흩날린다. 우울했다. 얼른 살것만 마저 사고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혼자 방구석에 쳐박혀 게이 야동을 보든, 만화책에 빠져 남주인공을 좋아해보든, 어느 쪽이든 좋으니 이 거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바로 그 사람을 보기 직전까지.

“저기요!"

180이 훌쩍 넘는 장신의 남자 머리 위로 살짝 앉은 꽃잎은 꽤 귀여웠다. 남자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주변을 두리번 거렸는데 그 뒷모습이 매력적이다.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저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던 순간-

"네?"

세상이 컬러풀하게 보인다는 건...이런 걸까? 나른한 눈매. 짧은 흑색 머리칼. 얇은 셔츠 위로 보여지는 잔잔한 근육. 톱니바퀴가 맞춰진 마냥, 이 봄날의 거리에는 우리 두 사람만 있는 것 같았다. 찰나의 시간. 당신과 내가 눈이 마주친 시간. 그것은 영겁의 시간처럼 길게 이어져 당신의 모든 것이 온 몸에 새겨지는 듯 했다.

"아,아,그...어..."
"맛층- 오래 기다렸어?"
"아니. 금방 왔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조차 잊어버린 상황에서, 우리의 공간을 침범한 것은 다름 아닌 여자 한 명. 컬러빛으로 가득한 세상이 다시 나락으로 추락한 느낌. 산뜻한 봄 내음 사이에서 추적한 쓰레기 냄새를 맡는 느낌. 아아, 기분이 더럽다. 더러워 미치겠다. 여자라는 존재가, 이렇게까지 사람의 기분을 망칠 수 있단 말인가? 여자는 그 사람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그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내가 보낸 시선을 느낀건지 금방 이쪽을 봤지만.

"그 쪽은 누구..?"

예쁜 사람. 높이 올린 포니테일에 부담스럽지 않은 향수 냄새. 누가 보아도 여성스러운 차림새에, 귀여운 얼굴까지. 부족하지 않았다. 그의 여자로써 흠이 없었다. 내가 태클을 걸만한 곳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화가 치밀었다. 질투가 났다. 치졸하고, 옹졸한 질투심이.

"과외 학생입니다!!"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엄청난 바보야, 나는! 다른 말도 있었을텐데 하필이면! 주먹을 쥔 손가락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가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아픔이, 질투심과 부끄러움을 이기진 못했다.

"하하, 소개하는게 늦었지. 이쪽은 하나마키."

말도 안돼. 말도 안... 어떻게? 멍청한 나는 그 때 자신이 교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도, '하나마키 타카히로'라는 명찰이 붙어있단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입만 벌린채 서있었다.

"사실은 말이지~ 오늘 이 녀석 컨디션이 영 안 좋아서 바람 쐴겸 데리고 나왔는데, 어울려도 될까?"
"데이트 아니었어?!"
"화 내지마~ 응? 귀여운 얼굴 다 망가지잖아~"

자연스럽게 여자의 어깨의 팔을 두르는 저 사람. 이 개같은 상황을 모면시켜준 것에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내 눈은 그 사람의 팔언저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앞서가는 두 사람의 뒤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뒤쫓아간지 10여분. 작은 카페에 들어선 두 사람을 따라 들어가니,

"잠깐 화장실-"

고맙게도 여자는 화장실에 가버렸다.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와중에도 그 사람의 얼굴에서 눈이 떨어지질 않았다. 반면, 이쪽에는 전혀 흥미 없다는 듯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그 사람은 내가 듣고 싶었던, 나를 향한 말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뭐하자는 거냐?"
"그러니까... 저기.. 과외를 해주셨으면 해서.."
"그게 처음보는 사람한테 다짜고짜 하는 소리야?"
"죄송..합니다."
"거절한다."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고, 첫 눈에 반했다는 말따위 통할리도 없었고, 내가 좋아한다 말했을때 차갑게 식은 눈으로 날 기피할 저 사람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날 괴롭히고 손가락질 하던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았던 주제에!! 좋아하는 사람이... 날 혐오하는 건..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알지도 못하는 누구때문에 데이트 방해는 물론이고 기분까지 더러워진 마당에 과외?"

고개를 절로 숙여졌다. 나는 흙과 먼지가 묻은 운동화. 저 사람은 윤택이 흐르는 가죽 구두. 그래, 당신과 나의 차이는 딱 이만큼이겠지. 뜨거운 뭔가가 목울대 끝까지 차올랐을때,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돈이 필요해진 참인데 잘됐네. 얼마에 할래."

그의 나른한 웃음 소리는
지독하게
나를
옭아맸다.




#




머그잔이 미적지근하게 식어갈 무렵, 딸기 케이크가 바닥을 드러낼 무렵, 마츠카와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아메리카노를 홀짝인다. 동시에, 더이상 케이크가 없다는 사실에 입맛을 다시는 하나마키에게 무심한듯 말을 던진다.

"설마 흑심을 품고 나한테 말을 걸었을 줄 누가 알았겠어?"
"....부끄러우니까 그만해요...."

가을의 냄새. 하나마키는 그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 가을에 들어서면서 폴라티를 즐겨입었다. 몸에 딱 맞도록 만들어진 옷감은 그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몸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목끝까지 뒤덮어 절제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었다. 분홍빛 머리칼에서부터 붉게 달아오른 귓볼, 오물거리는 입술, 가려진 목젖, 그리고 살짝살짝 드러난 몸선까지. ...위험하다ㅡ,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울려대는 적색 경보에 마츠카와는 애써 침착하며 말을 돌려본다.

"아? 그럼 고백은 어떻게 한거야?"
"잇세이!!!!"
"선생님 호칭은 어디다 갖다 버렸어?"
"과외 그만두셨잖아요!"
"과외인가-"

그래, 과외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내가 이 녀석의 과외를 해준게 맞을까? 과외라는 이름을 뒤집어쓴 어떤 스위치를 눌러버린 건 아닐까? 자동적으로 머리를 짚게 된다.

"내가 어쩌다 이런 어린애랑-"
"어린애 아니에요!!"

부끄럽다면서 귀를 붉힐 때가 바로 방금전인데, 어리다는 말에 발작하듯 반응하는 그 모습이 더 어린애처럼 느껴진다는 걸, 하나마키는 알고 있을까? 마츠카와는 투정부리는 아이 달래듯이 그의 머리 위로 손을 올린다.

"얼씨구, 오냐오냐해줬더니 큰 소리도 치고...우리 히로 많이 컸다?"
"7살차이가 뭐 별거인가요."

금방 그의 손을 쳐낸 하나마키였지만 말이다. 7살. 작지 않은 나이차이. 그리고 성별. 이 두 가지는 그 때의 계절이나 지금이나 두 사람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었다.




#




때는 6월의 어느 날. 풋풋하던 새싹들은 어느덧 짙푸른 녹색으로 빛을 발하던 때. 나날이 뜨거워지는 땡볕에 나는 한창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덤으로 하나마키의 어머니가 주신 수박화채 한조각을 입에 문채. 과외는 순조로웠다. 하나마키는 예상외로 모범생이었고, 조금만 알려줘도 금새 잘 따라오는 아이였다. 숙제도 내주는대로 다 해오고, 과외를 시작한 이후로 시험 성적도 상승세라 나쁘지 않았다. 어려운 건 없었다. 전혀.

"좋아합니다."

방금전까지만해도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좋아해요."

첫 한 마디는 농담인줄 알았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말 못할게 뭐 있나ㅡ. 라고 생각-

"좋아해. 좋아해 정말정말 좋아해!!!"

아무래도 내가 생각한 그런 감정이 아니었나보다. 눈물이 한가득 고인 눈으로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채 폭풍처럼 내뱉었던 너의 고백은 나를 충분히 당혹스럽게 했다.

"하나마키..?"
"말하고 싶지 않았어. 7살이나 어린데다가 심지어 남자인 내가 고백해봤자, 가망이 없을거라고. 포기하라고. 포기하는게 편할거라고, 계속, 계속!!"

7살이나 어린. 그래, 이 녀석은 어리다. 어리기에 아직 헷갈려 하는 것이리라. 자신이 좋아해야해는 사람은 나같은남자가 아니라 또래의 여자아이라는 것을.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 그 대상이 내가 된다면이라는 생각을 몇번 해본 적 있다. 불쾌할거라고, 꼴도 보기 싫을거라고, 가볍게 결론지었는데. 우습게도 나는 묘한 기분이었다. 싫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닌, 미묘한. 단지, 저 녀석의 눈물 고인 눈이 신경쓰였을뿐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 이렇게... 이렇게 당신앞에만 있으면 가슴이 쿵쿵 거리고 스스로 주체를 못하겠는데... 어떻게 참고 견디란 거야..."

가슴 한가운데를 움켜쥐며 말하는 너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줘야할까. 어떤 말을 해야, 네가 상처 받지 않을까. 그렇다. 난 이미 이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야하나하는 고민에 빠진 것이다. 뒤늦은 후회를 하기 전에 네가 조금더 빨리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당신을 좋아하고 있어요.."

여자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ㅡ, 면 그건 거짓말이다.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 같았다. 그 백지 위로 그려지는 건 발그레한 볼을 띄고 있는 하나마키의 얼굴. 아니야. 그래선 안돼. 나는 여자친구가 있고, 이 녀석은 어리고, 남자애고, 그러니까-

"...미안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나는 도망쳤다. 비겁하다해도 상관 없었다. 머릿속을 가즉 채운 17살의 꼬맹이를 더이상 보고있을 수 없었다. 그랬다간 스스로가 무슨 짓을 할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 방을 도망치듯 빠져나온 나는 홀로 남겨진 그 녀석의 심정따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녀석이 혼자 남아 눈물을 삼키고 또 삼키는 소리 따위, 들을 수 있을리 없었다.




#





"그 때 말이에요."
"응? 언제-"

다 식어버린 머그잔의 손잡이를 만지작 거리던 하나마키는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어느새 그의 옆자리로 옮겨 앉은 마츠카와는 그의 턱을 들어 예쁜 볼 언저리에 뽀뽀 세례를 퍼붓는다.

"아 그만해요. 사람들 다 쳐다본다구요."
"부끄러워? 소심해졌어?"
"당신이 대담해진거에요!!"

열이 오를때마다 목소리가 커지는 건 여전하다. 뭐, 그게 귀여운 거지만. 촉- 가볍게 입술이 닿는 곳마다 꽃이 피어오르듯 붉어지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사랑스워 당장이라도 키스를 퍼붓고 싶은 마츠카와. 사귄지 꽤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럴때면 잔뜩 긴장해 무릎을 꼬옥 움켜쥐고 있는 하나마키. 그 둘은 누가 보아도 애정이 흘러넘치는 연인이었다. 긴장하고 있는 그의 손위로 마츠카와가 손을 겹쳐온다. 자신의 것과 엇비슷한 손크기에 흐뭇하다가도, 여자보다 부드러운 살결에 흠칫 놀라던 마츠카와는 이내 그 어여쁜 손에 깍지를 끼운다. 놀라지 않게, 천천히. 맞잡은 손은 불에 데이듯 뜨겁고 뜨거워 긴장감이 옮을 것만 같았다.

"하여튼 한 마디도 지려고 안한다니까. 그래서, 언제 말하는 거야?"
"그 때.... 제가.. 처음 고백한 날.... 제 고백 듣자마자 나가버렸잖아요."

아아, 그 날.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던 그는 아직도 그 때처럼 울것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하나마키를 지그시 보기만 했다.

"...그때 어디 가셨어요..?"
"....비밀."
"치사해!"

들으면 너 분명 울테니까. 널 혼자 버려두고 그대로 여자친구를 찾아가 미친듯이 몸을 섞었다는 걸 알게된다면, 너 분명 울테니까. 볼에 바람을 빵빵히 채워 흥 소리가 나도록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는 하나마키를 달래기 위해 깍지 낀 손에 힘을 준다. 이럴 땐 달콤한 말이 특효라는 걸, 마츠카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돌아왔잖아."
"....무슨 심경의 변화였어요?"
"심경의 변화라... 그냥, 조금 늦게 깨달은 것 뿐이야."

동그래진 눈. 살짝 벌어진 입술사이로 풍기는 캬라멜 향. 그래, 그런 네가 좋아. 좋아하고 있었던 거야.

"널 좋아하고 있다는 걸."




#




정확히 그 날로부터 일주일 째. 알고 있었다. 가망이 없다는 것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일주일 다 되도록 연락 한통 없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안돼. 또 울어버릴 것 같아. 어제도, 그제도, 계속... 울었는데. 차라리 말하지 말걸. 아무리 참기 힘들어도 그냥 마음속에만 담고 있을걸. 바지 자락을 적시는 물방울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또 한바탕 쏟아지려고 준비중이었다. 방문이 열리기 직전까지는 말이다.

"선생님..?"

지금 눈 잔뜩 부어있을텐데.! 울다 지쳐서 잠든게 하루이틀이 아니라 피부도 푸석할테고! 아니아니 이게 아니지. 분명 고백... 거절하셨을텐데. 다시는 못 볼줄 알았는데. 아니야, 착각하지 말자. 분명 돈이 필요해서 돌아오신 걸거야. 고백은 고백일뿐, 공적인 관계는 과외 선생님과 학생이니까. 헷갈리지 말자. 정리하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이 마주친 5초의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자신과의 매듭을 지었다.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대답해야한다. 그리고 대답했다.

"네."

억지로 웃어보이면서.

머릿속으로, 그리고 마음속으로 정리를 하고나니 한결 개운했다. 우리 둘만의 공간에서 들리는 것은 초침이 째깍이는 소리와 연필이 종이에 닿아 사각이는 소리밖에 없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마음이 편했다. 차라리 아무말도 안하고 공부만 봐주는게 편했다. 그래, 이게 올바른 관계인 거다. 내 고백따위 없었던 일로 하면 그만인 거다. 처음봤을 때처럼, 이쪽에는 흥미도 없다는 것처럼 쳐다보지 않으면 된다. 연필을 쥔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이 실렸다. 냉정해져야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 몸은 따라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날카로운 못이 되어 가슴 한가운데를 마구 헤집는 것 같았다. 오늘만, 오늘만 견디자. 오늘만 지나면, 분명 괜찮아질거야. 하루하루 지날수록 이 빌어먹을 감정은 점점 더 무뎌질테니. 그렇게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고 있을때, 폭탄 선언과도 같은 말이 들렸다.

"헤어졌어."

또 다. 처음 만났을때와 같다. 이 공간에 우리 둘만이 있는 것처럼, 모든 시간이 멈춰버리고 우리 둘만을 감싸는 것처럼.

"헤어졌다고요?"
"그래. 두번 대답하게 하지마."

그 사람은 여전히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정면의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벽지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나때문에 그런걸까? 내 고백 때문에? 기대.. 해도 되는걸까?

'...미안하다.'

아니. 그건 분명 거절의 의미였다. 이제와서 기대해봤자, 변하는 건 없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나한테 말하는 이유는 뭐지? 동성의 위로가 필요한건가? 온갖 생각들이 물밀듯 덮쳐왔다. 실날같은 기대심에 들뜨다가도, 그걸 부정하듯 떠오르는 그 사람의 뒷모습이 겹쳐왔다.

"하지만, 그..!"
"아아, 시끄러워. 이제 됐어. 이미 끝난일이니까."
"괜찮지 않아요!!"

그래. 중요한건 괜찮지 않다는 것이다. 그걸 말하는 당신도, 그리고 나도. 분명 괜찮지 않다. 어쩌면 여자쪽에서 헤어지자 했을 수도 있다. 바로 나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미치도록 올라오는 죄책감과 죄악감이 숨통을 조여왔다. 이 사람이 헤어지자 했을리 없어. 여자쪽에서 헤어지자 한걸거야. 내가 쓸데없이 입을 놀려서. 내가...동성애자라서. 좋아하는 사람한테 헤어지자 소리를 들은거야. 그게 얼마전 그에게 고백하고 부정당한 내 모습과 겹쳐보이자, 빌어먹게도, 공감이 되기 시작했다.

"호들갑 떨기는."
"그치만.. 그치만..! 좋아하잖아요!!"

그 여자를 좋아하잖아. 왜 헤어진거야. 정말 나 때문이야? 내가 쓸데 없는 소릴 지껄여서?

"좋아하는데... 그렇게 좋아하는데... 헤어진다는게 말이 되냐구요..."
"어이."

부럽다. 저렇게까지 저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나는 아무리 원해도, 아무리 애원해도, 받을 수 없는데.

"...미안해요.. 선생님 사랑을 마음껏 받을 수 있는 그 사람이... 부러워서 그래요.."
"하나마키."
"아니에요! 이제 더이상 말 안할게요. 저도 정리했는걸요? 정말 괜찮아요!"

아니에요. 사실은 괜찮지 않아요. 그 여자를 바라보는 마음의 절반, 아니 손톱만큼이어도 좋으니까, 날 돌아봐줬으면 좋겠어요.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여기에도 제대로 있다는 걸-

"대답해, 하나마키."

오늘 처음으로 눈이 마주쳤다. 잔뜩 충혈되고 부어있을 내 눈과 가늘면서도 날카로운 그의 눈이 마주쳤다.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 시선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네."
"넌 아직 어려."

그래. 나의 또다른 컴플렉스. 나는 이 사람보다 7살이나 어렸다.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만약에 우리가 연인이 될지라도, 나이의 벽은 무시할 게 못 됐다. 알고 있어. 제대로.. 알고 있다고. 그래도-

"어리지 않아요! 알거 다 아는데-"
"살아가다보면"

그 사람은 나도 모르게 높아지는 언성을 잘 끊을 줄 알았다. 아예 내 쪽으로 몸을 돌려서 말하는 그로 인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좋아해도 헤어져야할 때가 있어."
"왜....?"
"으음, 예를 들면-"

손으로 턱을 문지를 모습이 멋있다. 저기에 수염을 기르면 어떨까? 분명 잘 어울리겠지? 사귀게 된다면, 그런 모습을 매일같이 볼 수 있을텐데. 차라리 여자였다면 가능성이 있었을까?

"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아... 그렇구나. 망치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감각이란 이런거겠지. 기대했던 내가 바보같아. 무슨 기대를 한거람. 눈물샘은 하루도 마를 새가 없구나.

"그 사람이 귀엽고 귀엽고 귀여워서 어쩔 도리가 없을 때."

젠장. 불난데 기름 붓냐고. 결국 새어나오는 눈물 한줄기에 다급하게 손으로 문질러 보지만, 날 뚫어져라 보고 있는 이 사람이 그걸 놓쳤을리 없다. 내 마음 다 알고 있는 주제에. 내 고백 제대로 들었으면서. 가슴이 무너지고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에 속이 메슥거리시 시작했다. 토하고 싶다. 그만하고 싶다. 모든 걸 놓고 싶다. 더이상 말하지 말아주세요, 제발.

"상대가 남자라는 걸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이 따라주질 않을 때."

귀가 잘못 됐다. 어딘가 잘못된게 틀림 없다. 그럴리 없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 그의 입밖에서 튀어나올리 없었다. 헛소리가 들린거다.

"너 때문에 헤어졌다ㅡ. 라면 어쩔래?"

귀도 고장나고,
눈물샘도 고장나고,
내 마음도 고장난게
틀림 없다.




#




"히로 얼굴 새빨개."
"놀리지 마세요!"

잘 익은 사과 같아ㅡ, 장난스러운 말투와는 달리 그의 손길은 진득하다. 깍지 낀 손을 놓기는 커녕 그대로 자신의 입가에 가져가 촉- 소리가 나도록 손등에 입을 맞춘다. 손등 뽀뽀임에도 불구하고 마츠카와의 그것은 어째서 이리 야한건지. 애써 그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던 하나마키는 문득 자신만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치사해, 나는 엄청 떨렸는데.

"잇세이는 그 때 안 떨렸어요?!"
"무진장 떨렸지."

손등에 흩뿌려진 입술자욱은 핏줄이 그대로 비치는 손목까지 내려간다. 마지막으로 쪽 소리가 적나라하게 나도록 입을 맞춘 마츠카와는 그의 손을 저의 가슴께로 가져간다. 규칙적이라기엔 너무나 쿵쾅거리는 그의 심장박동에 또다시 얼굴에 열이 오른다.

"지금도 떨려."

그리고 서로 말을 맞춘 마냥

"사랑해, 히로."
"사랑해요, 잇세이."

두 사람만의 가을을 맞이한다.






*리마님 캘리그라피입니다.
*보쿠아카 전력 60분
*모종의 이유로 과거에 헤어졌던 연인, 보쿠토와 아카아시가 교복을 벗고 같은 회사, 같은 부서에서 다시 한번 만나게 되었다면?
*어른이 되면서 자신감과 웃음을 잃어버린 보쿠토 X 과거의 상처를 품에 안고 어른이 되어버린 아카아시



W. 멜





"아카아시?!!"

서늘한 적막을 깨뜨리는 그 목소리는, 그의 귀에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교복을 벗은지가 몇 년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목소리는 아직까지 자신을 옭아매고 있단 말인가? 보쿠토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는지 아카아시는 다시 한번 상체를 숙인다.

"올해 상반기부터 HK기업 영업사원부 입사한 아카아시 케이지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는 사내에 기대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훈남이라며 꺅꺅 대는 여자들부터

"보쿠토군이랑 신입사원.. 아는 사이인가?"
"저 보쿠토군이랑..?"
"어쩐지 신입 불쌍하네~"

안쓰럽다는 듯 그를 동정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이쪽은 보쿠토군. 1년 먼저 입사한 선배니까 이것저것 배우고, 보쿠토군도 잘해봐."

짖궂은 일이다. 좋게 헤어졌다면 차라리 웃으며 마주할 수 있었을텐데. 최악의 형태로 이별을 맞이해 이 순간 이런식으로 두 사람이 마주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마른침을 삼키고 있던 것은 비단 아카아시뿐만이 아니었다. 보쿠토는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연신 잔기침을 내뱉고 있었다. 이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한 것이리라.

"서로 안면있는거 같아서 두 사람 붙여준거니까."

그러나 인연이란 과거의 한때처럼 단번에 끊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선임이 나간 빈 휴게실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다.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박고 있는 보쿠토의 머리는 왁스따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추욱 쳐져있다. 그 침묵을 참다 못한 아카아시가 입을 열려던 찰나, 보쿠토가 목소리를 낸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목소리는 그의 심정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너...일부러 여기 지원한거야? 나 있는 줄 알고..?"

아카아시는 갑갑한지 넥타이를 살짝 느슨하게 한다. 그의 대답이 들릴 기미가 안보이자, 드디어 보쿠토가 고개를 든다. 몇 년만에 마주하게 된 호박빛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채,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몰랐습니다."
"아카아시...나,나는.."
"회사입니다. 자중하세요."

뒤돌아서려던 아카아시의 어깨를 잡은 것은 보쿠토. 그의 고운 미간이 눈에 띄게 찌푸려진다. 하, 몇 년 전일을 아직도. 우연히 같은 회사, 우연히 같은 부서, 게다가 일 파트너까지. 우연의 연속이 아카아시의 이성을 건드리고 있었다.

"나 좀봐. 나랑 얘기좀 해."
​"할 얘기 없습니다."
​"내가 있어!!"
​​
길게 쳐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위협적인 눈동자, 쾅- 소리가 나도록 탁자를 내려치는 손. 이 모든 행위가 오히려 아카아시를 차갑게 만들고 있다는 걸, 보쿠토가 알 리 없었다. 아카아시는 언제 이성이 흔들렸냐는 듯 무미건조하게 대답한다.

"사적인 대화는 피합시다. 더이상 학생신분도 아니고-"

식은 눈으로 보쿠토를 마주하며

"우리 관계는... 정리 했잖아요?"

망설임 없이 뒤돌아선다.




#




"복사기는 이렇게 쓰면 되는..! 어..... 어..... 왜 안되지... 아까까지....됐는데..."
"용지 부족이네요."

우스운 광경이다. 후배가 선배보다 잘 알고 있으며 능숙하다는 것이 말이다. 중고등학교를 보쿠토와 보낸 아카아시에게는 익숙한 일이라는 게 흠이랄까.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시던 일 마저하세요."

그가 기억하는 보쿠토는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쳐진 머리카락을 따라 쳐진 어깨. 자신감 없는 말투. 허둥거리는 모습. 한마디로, 한심... 했다. 이미 끝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카아시는 그에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미련일까? 아니, 그럴리 없다. 그렇다면 왜? 의문을 품던 아카아시에게 주변 소리가 하나둘 들리기 시작한다.

"자료 조사한 보고서입니다.."
".....보쿠토군. 자네 입사한지 벌써 1년이 다되어가는데.."
"......."
"일 이따위로 할건가?"
"...죄송..합니다."
"똑같은 말 반복하는 것도 지겹고, 계속 이런 식으로 일하면 우리도 방법이 없네. 내일까지 다시 해와."

그제서야 입사 첫 날, 자신에게로 향하던 동정의 목소리가 납득이 간다.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보쿠토의 위치가 보인다. 그가 제출한 서류를 책상위에 내던진 부장은 그에게 눈길하나 건네지 않은채 말한다.

"마지막이야."

복사한 서류들을 정리하던 아카아시가 입술을 살짝 깨문다. 왜 자신이 불편함을 느껴야하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미묘한 불만스러움까지. 남의 눈치를 보는 보쿠토도, 그런 그를 향해 보이지 않는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자신에게도.

"아카아시군, 거기 서류 정리 좀 해주실래요?"
"네."

건네 받은 파일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아카아시를 흘긋 엿보던 여사원들은

"얼굴도 잘생기고, 일도 척척 잘하고.."
"사내 신랑감 1순위 갱신!"
"여자친구 있을까?"
"100퍼 있을거야- 저런 좋은 남자를 어느 여자가 내버려두겠니?"

저들의 망상을 시작한다.



#




"없습니다."
"에에엑?!!"

신입사원 환영회라는 이름 아래에, 진실이 하나둘 벗겨지며 여사원들의 추적이 시작된다. 여자들 사이에 끼어 술과 질문을 동시에 받아야했던 아카아시를 지켜보던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멀지 않은 자리, 보쿠토는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 녹아들지 못한채 홀로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 그의 관심은 오로지 아카아시 한 명. 빈 잔을 술로 채우던 보쿠토가 흠칫하는 이유가 있다면,

"전에 사귀었던 사람은?"

자신의 과거, 그리고 그의 과거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저 질문 때문이리라. 여자는 아카아시의 술잔에 술을 따라주며 다리를 배배 꼰다. 안그래도 짧은 치마가 말려 올라가 허벅지의 대부분을 드러낸다. 여자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잔 속의 찰랑이는 술을 빤히 쳐다보던 아카아시가 슬쩍- 보쿠토쪽을 흘겨본다.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처럼화들짝 놀란 보쿠토는 기어코 잔을 엎어버린다. 아무도, 그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 듯하지만. 아카아시는 단번에 술을 들이킨다.

"....한 명, 있었습니다."

분주히 테이블을 닦던 손이 멈춘다. 젖어들어가는 휴지조각. 그 때를 상기시키는 것만 같아 보쿠토는 숨을 멈춘다. 이 공간에, 오직 아카아시와 그만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얼마 사귀지도 않았으니까 없는 셈치죠."

빠득- 어금니를 꽉 깨문 보쿠토는 화풀이 하듯 테이블을 빡빡 문지른다. 분명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분하다. 너와 나는 분명 사귀었다. 정말, 정말... 좋아했는데.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아카아시. 그 일을 없는 셈 칠 정도로, 나는... 너에게...

핏방울이 맺히도록 입술을 세게 깨물던 보쿠토는 찡해져 오는 눈시울을 막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가 있던 자리에는 엉망진창으로 젖은 휴지가 잔뜩 뭉쳐져있었다. 마치 그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던 아카아시는 그가 문밖으로 사라지자, 긴장감이 탁 풀린듯 눈을 지그시 감는다.

"와- 이 시계 어디꺼야? 올 블랙이라서 세련돼 보인다-"

징그럽다. 술수가 뻔히 보이는데 왜 엉겨붙어 오는 걸까. 아카아시는 자신의 손목시계에 관심이 있는 척, 밀착해오는 여자를 부드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밀어낸다. 세련되어 보일리 없었다. 벌써 사용한지 꽤 오래된 것이고, 사용감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름 있는 브랜드는 아닙니다.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선물받았구나?! 여자??"

선물 받았다ㅡ, 라.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조적인 미소를 띠던 아카아시는 저의 손목을 감싸고 있던 시계를 다른 손으로 쓸어내린다.

"...선물 받은 건 아닙니다."

그리고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선물할 예정이었죠."

중얼거린다.




#




힘껏 달아오른 술자리의 중심은 아카아시였다. 하지만 신입사원이라는 이유로, 훈남이라는 이유로, 솔로라는 이유로 안주없이 술을 스트레이트로 받다보니 그의 속은 뒤집어지기 일보직전. 그의 단정하던 와이셔츠는 어느새 멋대로 풀어헤쳐지고 곳곳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들이 들린다. 게다가 보쿠토의 빈자리. 그가 나간지 꽤 시간이 흘렀건만, 아무도 그의 빈자리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 굉장히 거슬렸다. 이유는 모른다. 단지 그의 빈자리로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을, 아카아시는 구태여 부정하진 않았다.

"아카아시군~ 아~ 해봐~"
"죄송합니다. 속이 좋질 않네요."

반은 진심, 반은 거짓말.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한 변명, 보쿠토를 찾으러 나가고 싶은 것에 대한 구실.

"잠깐 바람좀 쐬고 오겠습니다."

다행히 보쿠토는 가게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다행? 그를 향해 걸어가던 아카아시는 안심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저 인간이 뭔데 신경쓰고, 걱정하고, 안심하냐, 아카아시. 옛날 일은 다 까먹었나봐?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 어느 쪽이 옳고 그른것일까. 하물며 술에 취한 자신이 그걸 판단할 수 있을까. 아카아시는 발걸음을 멈춘다. 그 인기척에 보쿠토 또한 뒤를 돌아본다. 뚫어질듯한 그의 시선을 애써 피해 주머니에 구겨 넣어둔 담배갑을 꺼낸다. 양복자켓을 한쪽 팔에 든채, 익숙한 듯 담뱃불을 붙여 깊게 숨을 들이키는 아카아시. 그리고 굳은 표정의 보쿠토.

"언제부터 핀거야."
"...후ㅡ. 괜한 참견입니다."
"그러다 폐암걸린다, 아카아시?!"

내뱉은 숨결을 따라 퍼지는 담배 연기는 사뭇 씁쓸해보였다. 검지와 중지 끝에 위태롭게 담배를 걸치던 아카아시는 싱긋- 웃어버린다.

"기분 잡치게 하는데 재능이 있으신가봐요."

그 상큼한 미소에 보쿠토의 표정이 구겨진다. 이게 아닌데, 이러려고 말을 꺼낸게 아닌데. 머리를 마구잡이로 헤집던 보쿠토와 달리 아카아시는 냉정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고!!!"
"뭡니까. 할 말 있으세요? 없으면 꺼져주시겠습니까. 혼자 있고 싶거든요."
"....아카아시...차가워졌네."

보쿠토의 한마디에,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 누가 누굴 보고 하는 소리입니까."
"우리 그때만 해도-"
"그만하세요."
"아카아시!!"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가ㅡ.

"구질구질한게 누군데!!!"

한번 터지기 시작한 것은

"기껏 참고 참고 또 참아서 간신히 잊었는데!!!!"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

"그걸 자꾸 들춰내는게 누군데!!!"

그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을-

"이제와서 무슨 낯짝으로!!!!!"

내리 꽂는다. 반도 타들어가지 않은 담배를 바닥에 떨구고 구두로 짓밟던 아카아시는

"...언성이 높아졌네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보쿠토를 홀로 내버려 둔채 집으로 향한다. 멀어져가는 아카아시를 바라만 봐야하는 자신의 모습이 기억의 조각과 겹쳐진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음을 뜻하는 것만 같아 보쿠토의 흐린 눈에는 의미모를 눈물이 차올랐다.




#




"좋은 아침입니-"
"도대체 제대로 하는게 뭐야?!!!"

사무실이 떠나가라 들리는 고함소리. 그 끝에 있는 것은 익숙한 뒷모습. 왁스는 커녕 손질조차 되어있지 않은 머리카락은 그의 뒷모습처럼 힘을 잃었다. 연신 고개를 숙여가며 사과하는 보쿠토의 머리 위로 종이뭉치들이 흩뿌려진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 죄송하다 말만하면 다야!!!! 일 이따위로 할거면 당장 짐싸!!"
"....부장님."
"꺼지라고!!"

내팽겨쳐진 그것들은 아카아시의 발밑까지 날아온다. 고함소리로 인해 집중된 사람들의 관심은 그 타겟이 보쿠토인 것임을 확인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돌린다. 홀로 바닥에 주저 앉아 흩어진 종이들을 줍는 보쿠토에게 도움을 주는 이는, 빌어먹게도 아무도 없었다. 주먹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아카아시는 저의 발밑에 깔린 종이를 주워들어 깊은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 건네자,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시선을 피하며 간신히 들릴정도의 목소리로 대답한다.

"...고마..워."

심한 말이라면, 심한 말이었다. 차라리 필름이 끊겼다면 좋으련만. 불행히도 아카아시는 어제 밤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에게 저주처럼 퍼부었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사과해야할까? 아니, 사과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누가 먼저 시작한 일인가? 아카아시는 고개를 내저었다.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인정할 건 인정해야한다. 몇년 전, 헤어졌다. 마음의 정리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신경쓰인다. 지금도, 휴게실 구석에서 퇴짜맞은 보고서를 분쇄기에 넣고 있는 그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것만 봐도. 분명하다. 커피를 한모금 입에 머금은 아카아시는 처량하기 그지 없는 그의 뒷모습과 자신의 손목시계를 천천히 번갈아본다.

지쳐보이는 등과 손목시계. 애정과 증오. 관심과 무관심. 현재와 과거.

진흙탕을 구르듯 혼잡하던 머릿속은 끝끝내 현재를, 그리고 저 뒷모습을 택하기로 다짐한다. 머그잔을 든채 보쿠토쪽으로 다가간다.

"데이터 부족입니다."
"악!!!! 깜짝이야!!!!"

사람들의 무관심과 자괴감에 익숙해진 탓에, 보쿠토의 놀란 목소리가 오히려 그를 놀라게 한다.

"시끄럽습니다. 초짜인 제가 봐도 정보 부족입니다. 게다가 원문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한 듯한 저 문구들은 뭡니까. 자신이 뭘 해야하는지, 이 일이 뭘 위한 건지 제대로 생각은 하신겁니까."

얘,얘가 지금 무슨... 무슨 소릴 하는 걸까.

이해하지 못한 머리와 다르게 고개를 휙휙- 젓고 있는 보쿠토의 몸은 매우 솔직했다.

"도와드릴게요."
"아카아시... 하지만... 그..."

당황스러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담배를 뻑뻑 피우며 자신을 부정하던 아카아시와 눈 앞에 있는 아카아시가 과연 동일 인물이란 말인가? 게다가 그 말을 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자신을 돕겠다고 하다니ㅡ. 의구심, 미안함, 그리고 죄책감이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그 결과, 그는 아카아시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동정일게 뻔했다. 그리고 그걸 애정으로 받아들일 자신을 알기에, 보쿠토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착각하지마세요. 어디까지나 지금의 회사 생활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니까요."

불행중 다행은 아카아시가 그런 보쿠토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보쿠토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그 미소에, 아카아시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그리고 제가 좋아했던 건.."

자신감이 넘치던 당신이었으니까. 밝게 웃는 당신이었으니까.

"응? 뭐라고?"
"아닙니다. 10분 후에 제가 보쿠토씨 자리로 가겠습니다."

한 편, 몇 년만에 듣는 보쿠토씨라는 호칭에 저도 모르게 펄쩍 뛰어버린 보쿠토를, 아카아시는 눈치챘을까?




#




3일간 밤낮으로 보쿠토에게 시달려본 게 몇년 만인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자료들을 넘겨보는 아카아시에게서 언뜻 관록이 느껴진다.

"와아!!!! 아카아시!!! 대단하잖아!!"
"소리 낮추세요. 다들 업무중이잖아요."
"그치만그치만 아카아시가 너무 잘해서!!!"

3일동안 회사 분위기는 꽤나 바뀌었다.

"제가 보여드린 파트는 이해하셨습니까?"
"아? 으음... 대충... 알아들었어!"
"그러다 해고되셔도 저는 모릅니다."
"아악!!! 기다려!! 5분! 아니, 10분만!!"

첫째는 아카아시. 첫인상만으로 신랑감 1위, 훈남 타이틀을 차지해버린 그의 이미지는 보쿠토와의 단 3일만에 신부감 1위, 보모, 엄마 이미지로 바뀌게 되었다.

"왜 이리 소란스러워? 조용히!"
"부장님!!!"
"하아- 이번엔 뭔가. 무릎꿇고 빌건가?"
"아쉽지만 아닙니다! 이 보고서 체크 부탁드립니다!"
"...싫네. 또 자네에게 시간 낭비, 감정 낭비하느니 안보고 말지."
"부탁드립니다!!!! 한번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정말 마지막일세."

둘째는 보쿠토. 지난 1년간 음울하고 소심하며 일 하나 제대로 못하는 그의 이미지는 단 3일만에 최강 긍정, 단세포, 그리고 분위기 메이커로 자리잡게 되었다. 물론, 아카아시 덕분이지만 말이다. 이쯤되면 회사가 학교인지 학교가 회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자신은 언제까지나 엄마같은 부주장이고, 저쪽은 애같은 주장이고.

하지만, 역시 그 때로 돌아가는건 무리겠지. 청춘이라 불리는 것은 분명 끝났고, 우리는 이렇게 어른이 되었으니까.

턱을 괴고 행복했던 그 시절만을 떠올리던 아카아시의 귀에 고막이 찢어질 듯한 괴성이 들린다.

"아카아시!!!!!! 부장님이!!! 칭찬해주셨어!!!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볼륨 낮추세요."
"헤헤헤헤- 고마워, 아카아시!!!"
"아, 달라붙지 마세요. 싫습니다."
"그러지말고~~~"

온 힘을 다해 목을 졸라오는 보쿠토는 과연 자신이 전 배구부 주장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까? 신나게 웃어대던 보쿠토의 귀로, 아카아시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꽂힌다.

"보는 눈이 많습니다."

'보는 눈이 많잖아?!'

섬뜩하게 떠오른 옛 기억의 조각.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아카아시의 목을 쥔 손에 힘을 풀게 한다. 멋쩍은 듯 이마를 긁적이던 보쿠토는 떨리는 목소리를 내며 그에게서 멀어진다.

"그...그렇지? 그래.. 그럼! 이따..보자."

마치 건드리지 말아야할 것을 건드린 것처럼. 어색해진 공기는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거북이같은 시침과 분침이 퇴근시간을 어서 가리키길 손꼽아 기다린지 반나절. 고대하며 기다린 것과 다르게 그의 퇴근은 7시가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이쯤되면 아카아시도 진즉에 퇴근했을거라 믿었던 보쿠토는 놓칠뻔한 엘리베이터의 문을 억지로 열자마자 보이는 얼굴에, 이 거지같은 타이밍에, 욕이 나올뻔했다.

"아...지금 퇴근해?"
"네, 보쿠토씨는 뭐하다 이제 퇴근하세요?"

뭐하긴!!! 네 눈치보다가!!!! 이제!! 막!!! 가려했는데!!!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것을 간신히 억누르고 적당히 대답을 얼버무린 보쿠토는 오늘따라 천천히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가능하면 아카아시쪽을 보지 않으려한 그의 노력이 하늘에 닿았는지 다행히 아카아시는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층수가 변하는 것만을 빤히 쳐다보다 문득, 보쿠토는 오늘이 기회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엘리베이터 안이라면 아카아시도 피할수 없을테고. 결심한듯 양 손의 주먹을 꽉 쥔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옆모습을 돌아본다.

"아카아시! 저기! 그... 계속... 계속..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
"제가 먼저하겠습니다."

아카아시는 정면을 보고 있었다. 앗- 할 틈도 없이 그 특유의 나긋한 목소리가 둘만의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운다.

"좋아합니다."
"어?!"
"긍정적이고, 활기차고, 웃음이 많은 당신을 좋아합니다."

이 타이밍에 고백이라니, 반칙이잖아ㅡ. 얼굴로 피가 쏠리는 것을 느낀 보쿠토와 다르게 아카아시는 무덤덤했다.

"하지만 그 때와는 다른 감정입니다. 뜨거워지고, 짓눌리도록 아프고,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려서 질리도록 울어버린 그 때의 감정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부끄럽다. 그런 의미의 고백이 아니었다. 자신은 왜 항상 설레발을 치고, 의미 파악이 늦은 건지. 잠시나마 두근거렸던 스스로를 힘껏 패고 싶었다. 보쿠토는 고개를 숙였다. 죄스러운 마음에,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사람 대 사람으로 당신을 좋아합니다."
"....그래."
"그러니까 실망시키지 말아주세요."
"....."
"그 때의 당신을 사랑했던 저를, 그리고 지금의 당신을 좋아하는 저를."

아카아시는 여전히 정면을 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5층. 아직, 늦지 않았다. 이대로 끝내긴 싫었다.

"잠깐, 내 얘기도 들어줘."
"...네."

4층. 심호흡을 크게 하고-
3층. 멀찍이 떨어져있는 그의 손을
2층. 살그머니 잡아본다.

"...미안했어."
"....."
"줄곧... 줄곧, 그 말이 하고 싶었어."
"...그게 다입니까?"

1층. 아카아시는 발걸음을 옮긴다. 옮기려 한다. 그러나,붙잡힌 손에 힘이 실린다.

"아니."
"...놔주세요."
"사랑했어, 아카아시."

그 말을 끝으로, 마법처럼. 손과 손이 멀어진다. 아카아시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 보고 싶었다.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일 뵙겠습니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




"어머어머, 저 사람이 그 보쿠토군이야?? 머리 올리니까 인물이 산다!!"
"저런 훈남이 우리 부서에 있었다고? 야야, 웃는 거 봐!! 매력이 아주..!"
"그나저나 보쿠토군이 아카아시군이랑 같이 출근하니까...그림이네..."
"그러게... 변했네, 보쿠토군."
"아니, 원래 저런 사람이었을수도 있지. 우리가 몰랐을뿐."

소란스런 사내 분위기의 중심에는 두 사람이 있다. 오랜만에 왁스로 머리를 새우느라 대지각을 할뻔한 보쿠토와 그에게 전화하느라 아침 시간의 대부분을 소모해버려 기분이 저조한 아카아시가 있다. 뛰어오느라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손으로 훔치던 아카아시는 피부에 와닿는 익숙한 손목시계를 가만히 쳐다본다.

"생각해보니까 이 시계, 역시 보쿠토씨보다 저한테 잘 어울리는 거 같네요."
"하?! 그거 내 생일 선물이었잖아!"

모를 줄 알았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감추다 끝끝내 주지 못했던 선물이었건만, 보쿠토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이 아카아시를 얼마나 자극하는지도, 보쿠토는 알고 있을까?

"좋~아! 지금이라도 준다면 기 꺼 이 받아주지!!"
"더 좋은 걸 준비하려했는데, 보쿠토씨가 그렇게까지 이 손목시계를 원하신다면-"
"아니아니아니!!!! 더 좋은거!! 더 좋은거 줘, 아카아시!!!"
"싫습니다."
"도망가지 말고, HEYHEYHEY-!!"
"그 추임새 정겹네요. 이제 꺼져주시겠습니까."
"거절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이 된 두 사람의 선택. 그것이 옳고 그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적어도 지금 이순간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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